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(문단 편집) == 예수회의 회원으로서 == 예수회 회원이고, 중국에 오기전 선교사로서 예수회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,중국에서 선교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. 카스틸리오네는 위계가 낮은 평수사였고, 정식 선교를 할 수 있는 수도사제가 아니었다. 그래서 카스틸리오네가 관직을 수여받았을 때, 많은 동료들은 이를 두고 천주교를 선전할 좋은 기회라고 여겼으나 카스틸리오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, 왜냐하면 예수회 내에서 자신의 임무가 단지 화원일 뿐 선교의 직무는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다. 중국에 뿌리내린 [[예수회]] [[선교사]]에 대해 말할 때, 일반적으론 그들의 주요 임무는 선교이며 중국을 천주교 국가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인식한다. 그러나 모든 선교사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.예수회는 장기적으로 평신도 수사들의 기술과 예술을 매개로 중국 황제가 천주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으나, 그 염원은 [[아편전쟁]]과 [[청일전쟁]], [[의화단의 난]] 등으로 청조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19세기 후반에나 이뤄질 수 있었고, 그 때까지 수많은 선교사와 신자들이 추방되거나 순교해야만 했다. 카스틸리오네는 선교보다는 황제의 명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우선시 했다. 강건성세 청나라에서는 [[전례 문제]][* 2019년 7월 현재 전례 문제에 대한 문서가 없어 설명하자면, 기독교가 [[중국]]([[청나라]])에서 선교할 때 중국 전통과 기독교 교리의 충돌이 벌어지자(예:중국의 [[유교]] 전통과 조상 숭배 vs 기독교의 [[우상숭배]] 금지), 선교사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를 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고, 어느 정도를 허용할 것인지 벌어졌던 논쟁. 이후 기존 질서에 위협을 느낀 청나라 조정에 의해 기독교 선교가 금지되고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.]가 대두되어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는데[* 게다가 일부 수사들이 정치적으로 줄을 잘못 선 것도 있었다. [[강희제]]의 황8자 윤사와 황9자 윤당은 [[옹정제|황4자 윤진]]과 대립하는 차기 대권경쟁자였는데, 윤진이 제위를 이어받은 후 이들은 참혹히 숙청당했다. 이 과정에서 윤당이 천주교에 입교하고 라틴 문자로 전사한 [[만주어]]로 윤사와 몰래 연통했음이 들통나자 윤당과 교류하던 예수회 수사들에게도 불벼락이 떨어졌다.], 카스틸리오네는 서품을 받은 수도사제도 아니었던데다 황제의 총애를 받은 덕에 마카오로 추방되지 않고 북경에 잔류할 수 있었다. 반세기를 청나라에서 활동하다보니 그 화풍도 명확한 변화과정을 겪었다. 그의 그림은 오랫동안 후대 중국의 회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, 1766년 사망한 후 건륭제로부터 시랑[* 조선의 좌랑에 해당하는 관위이다.] 벼슬을 추증받았다. 그러나 카스틸리오네를 비롯한 예수회 수사들의 활동 덕분에 강건성세 청조는 천주교 포교를 금지하면서도 서양의 문화와 기술을 흡수할 수 있었다. 강건성세를 배경으로 한 여러 중국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서양식 시계나 천문 및 역법, 악기, 안경, 망원경, 머스킷 같은 놀라운(!) 과학기술 및 서양식 문화예술은 이들 예수회 수사들이 없었으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. 이들은 포교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없다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화원이나 음악가 등의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건축, 과학기술[* 흠천감에서 천문 역법을 담당하던 한족 관료들을 못 믿은 청나라 황제들은 그냥 서양인 선교사들을 기용했는데 이 관례가 훗날까지 이어졌다. ] 및 통번역 업무[* 일례로 네르친스크 및 캬흐타 조약에서 러시아와의 라틴어 통역을 담당한 이들이 바로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. 북경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러시아 외교관들도 이들로부터 많은 덕을 보았다.]에서도 서양과 중국의 소통창구 노릇을 했다. 그러나 이들을 통해 중국의 문화와 예술에 큰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연구와 분석을 거듭한 서양과 달리 청조는 이들을 똑똑한 재주꾼들로만 여기며 필요한 업무에만 써먹을 뿐 서양과의 광범위한 교류에 있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고, 중국은 결국 아편전쟁으로 시작해 한세기 넘는 세월 동안 수모와 치욕의 역사를 겪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